저는 어릴 적 네살까지 외할머니께서 키워주셨어요. 한 달에 한 번씩 부모님을 뵈었다고는 하지만 제 머릿 속에 남아있는 가장 어릴 적의 추억들은 모두 제 외할머니와 함께한 외가에서의 기억들로 가득합니다.
제가 네 살 딸아이를 키우면서 최근에 외할머니 생각이 참 많이 났었어요. '내가 이만할 때 외할머니가 나를 키워주셨구나.' 아이가 목소리가 꽤 우렁찬 편인데 그런 목소리도 할머니 젊으셨을 때 목소리와 참 많이 닮았어요. 노래와 춤도 좋아하는 우리 딸 아이를 보면서 젊은 시적 할머니를 많이 떠올립니다.
할머니는 늘 음식을 한상 가득 준비하셨어요. 하루에 세끼, 그 사이사이로 당시 대학생이던 삼촌, 이모들이 오갈 때면 또 할머니는 식사를 차리시고... 하루에 열번도 넘게 상을 차리셨던 것 같아요.
어릴 적 제 어렴풋한 기억에 할머니 부엌에는 제 키만했던 냄비에 늘 맛있는 대구식 소고기국이 가득차있었고요, 부추전, 생선, 김치등을 비롯한 맛있는 반찬들로 한상 가득 푸짐한 상을 준비하셨었어요.
동짓날이 되면 할머니와 새알을 빚어 팥죽을 쑤고, 설날 다가오기 전에는 쌀을 한 다라이 가득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뽑아 오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산, 절에도 많이 놀러갔었고, 할머니가 시키는 심부름을 하러 동네 장에도 많이 다녔어요.
그랬던 외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세요. 소식을 듣고 잠시 한국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아뵈었던 때가 제가 둘째 임신하고 첫째가 기저귀 차고 있을 때였네요. 제 일상이 바쁘다는 핑게로, 멀리 산다는 핑게로, 시차가 있다는 핑게로 연락도 자주 드리지 못하고 지내왔네요. 그래서 남편에게 한국을 짧게라도 혼자 다녀왔으면 한다 했더니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다음 날 바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갔고, 엄마와 함께 기차를 타고 외가 대구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셨고, 저와 함께 간 엄마께 "OO야, 네가 오니 든든하다."하셨습니다. 어쩜 제 한국 방문에 엄마도 든든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가있는 동안은 할머니께서 식사도 잘 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고 해서 얼마나 다행이고 기뻤는지 몰라요.
늘 정성들여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그 음식이 전 떠오르고, 할머니는 제게도 "(가족들) 좋은 것 잘 해먹이래이" 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엄마와 저, 나란히 3대가 누워 잠도 자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떠날 때 저를 보시며, "편지 쓰래이. 내가 이제 니를 또 볼란가..."하시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또 언젠가는 죽어 자연으로, 하늘로 돌아가죠. 이것이 세상 이치임을 알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늘 그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 떠난다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아직도 저를 부르시는 할머니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젊은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말이죠.
할머니가 보고싶네요. 제게 너무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 주시고 무한 사랑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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